사회적 약자.

사회적 약자

19살 김군, 이라고 불리는 스크린도어 하청업체 직원은 만 19세라는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업무 중 사망으로, 2인 1조로 근무하지 않았던 환경이, 그리고 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웠던 일의 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김군의 사망소식 이후로 홈페이지에 가끔 ‘은성PSD’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생겼다. 그제야 알았다. 똑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꽃다운 청춘 한명을 또 하늘로 보냈다는 것을.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직원은 손 쓸 새도 없이 사망했다. 그 일이 있고 은성 PSD와 서울메트로는 ‘무늬만’ 2인 1조 근무시스템을 갖췄다. 직원들의 근무환경이나 업무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2인 1조로 근무해라’라는 명령은 정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근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근무일지에 거짓으로 ‘2인 1조’의 근무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왜, 그렇게 까지하면서도 일을 했어야 했을까?

하청업체

하청업체 직원이니까, 그들은 실제 정비 기술을 익히지도 못한 ‘낙하산’ 메트로 직원들보다 더 낮은 월급에, 복지혜택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참고 다녀야 했다. 그래야 그들은 짤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단 몇 푼이라도 되는 돈을 모을 수 있으니까.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생명이 위태로운 작업환경을 견뎌야 했다.

한 기사의 제목을 빌리자면 이는 ‘사회적 타살’이다. 맞는 얘기 같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내가 못나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이런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집단 암시에 걸린것 같았다. 죽어라 노력해서 스펙을 올려도, 월 200도 안되는 월급에, 주말도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것은 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학창시절에 열심히 하지 않은 내탓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 같다. 노력하는 사람이 그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제대로된 끼니도 먹지 못한 채,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던 한 청년의 죽음은 ‘하청업체 직원이니까, 이러한 근무환경에서 일해도 불만 갖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라는 그 회사의 거지같은 높으신 분들로인해 초래된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회였다.

힘 없는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해야만 했고,

힘 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맞아야만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추모’물결이 일고 있는 이유는

그 사회적 약자가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자’라는 이유로 나보다 힘이 쎈 누군가에게 맞을 수도 있다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 강남역 추모 물결을 만들어 냈고, 내가 ‘비정규직’, ‘을(乙)’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근무 환경에서 근무하거나, 또 부당한 처우를 받을 수도 혹은 받고 있는 현실이 구의역의 추모 물결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러한 추모 물결은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우리가 지탄해야 할 대상이 누군지, 어떤 생각들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더이상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사지에 내몰리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 역시도 그러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데 아주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댓글 남기기